요즘 삼성에서 30년을 근무하고 정년퇴직한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위로해야 할 것 같고, 혹시 마음을 다치게 할까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들이 '별(星, 임원)'을 달고 퇴직한 공채 동기들을 바라보며 느꼈을 부러움, 의기소침함, 그리고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클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느림의 철학(知學)'을 내면화하고, 인생에서 중요한 다섯 가지 유리잔을 소중히 지켜온 분들이었습니다. 어느 하나도 금이 가거나 깨뜨리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첫째는 '일'입니다. 회사에서의 성과는 그들 삶의 중심이었고, 완벽을 추구하며 달려왔습니다.
둘째는 '가족'입니다. 일에 치여 충분히 챙기지 못한 순간이 많았지만, 항상 마음 에는 가족이 최우선이였습니다.
셋째는 '건강'입니다. 젊을 때는 버틸 수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병원 기록이 두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넷째는 '인간관계'입니다. 동료, 후배, 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소중했습니다.
다섯째는 '자신'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들려주는 삼성에서 정년까지 살아남은 직장 생활의 여정 입니다.
1. 뜨거운 가슴으로 시작한 30대: 꿈과 열정의 시대
1990년대 초, 대한민국 경제가 고속 성장하던 시기, 많은 젊은이들이 가슴 벅찬 꿈을 안고 삼성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의 감격, 첫 출근길의 설렘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30대는 배움과 도전의 시기였습니다.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선배들의 가르침, 그리고 야근과 철야가 일상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7시, 사무실 불이 켜지고 회의실에서 목표 달성을 다짐하던 순간들이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열정적인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공, 행복'이라는 목표를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30대 후반이 되면서 모든 사람이 원하는 속도로 성공할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성공에 대한 초조함이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2. 40대: 성장과 좌절, 그리고 차가워지는 가슴
40대에 접어들면서 현실의 벽이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동기 중 일부는 부장으로 승진하며 축하를 받았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씁쓸함도 있었습니다. 업무 강도는 여전했지만 체력은 30대 같지 않았고,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기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깊어졌습니다.
직장에서는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디지털 혁신과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면서 회사가 요구하는 역량이 달라졌습니다. 이에 적응한 사람은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점차 뒤처지게 되었습니다. 한때 잘나가던 동료가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40대 후반부터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앞으로 정년까지 어떻게 의미 있게 생활해 나갈 것인가' 라는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부터는 후배들의 시선이 달라졌음을 느꼈고, 한때 존경받던 선배가 '꼰대' 취급을 받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조직에서 계속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만의 강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은 “기술이든, 인간관계든, 나만의 고유한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3. 50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
50대가 되면서 지천명(知天命)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운명입니다. 어떻게든 삼성에서 아름답게 직장생활을 마무리하자고 다짐하였습니다. 오랜 직장 생활을 통해 그들은 결국 '전략적 생존법'을 터득했습니다.
(1) 전문성을 갖추라 - 회사가 인정하는 '나만의 기술'은 큰 자산입니다.
(2) 후배를 성장시켜라 -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도움을 주면 조직 내 입지가 더욱 단단해집니다.
(3) 인간관계를 재정비하라 - 퇴직 이후의 삶까지도 고려하여 재정비 합니다
(4) 변화를 받아들이라 - 기술과 경영 환경의 변화를 수용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5) 퇴직 후의 삶을 준비하라 -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와 실천은 필수적입니다.
그들은 30년 동안 삼성에서 치열하게 일했고, 이제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삼성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직장 생활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생존하는 소중한 여정이었습니다.
삼성에서 정년퇴직한 분이 남긴 의미 있는 말을 전합니다. "직장 생활은 스프린터도 달리고 마라토너도 함께 달리는 공간입니다. 빨리 달리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완주한 것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제 새로운 길을 걷는 그들이 삼성에서 배운 지혜를 바탕으로 더 풍요롭고 의미 있는 미래를 만들어 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나는 그들은 '소청백(素淸白)'의 품성과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그들은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but Today is a gift. That's why it's called the present." 라는 문구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인생도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소청백(素淸白)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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