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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이후, 노사관리는 HR의 ‘법무 업무’가 아니라 ‘조직 설계’다
  • 박원용 전문위원
  • 등록 2025-12-18 08: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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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란봉투법은 HR에게 부담만을 주는 법이 아니다. 오히려 이 법은 HR의 전략적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노란봉투법 이후, 노사관리는 HR의 ‘법무 업무’가 아니라 ‘조직 설계’다

노동조합법 제2조·제3조 개정, 이른바 노란봉투법 시행은 인사관리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번 개정은 단순히 손해배상이나 가압류 요건을 조정한 법률 변화가 아니다. HR 관점에서 보면, 이는 노사관계를 사후 분쟁 처리의 영역에서 사전 설계와 예방의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구조적 전환이다.

그동안 많은 기업에서 노사관계는 인사팀 내에서도 ‘특수 상황’으로 분류되어 왔다. 평상시에는 제도 운영과 인재 관리가 중심이 되고, 분쟁이 발생하면 노무·법무 중심의 대응 체계가 가동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노란봉투법 이후 이러한 이원화된 접근은 한계를 드러낸다. 교섭의 성실성, 관리자의 언행, 인사제도의 설계 방식 자체가 분쟁 책임 판단의 요소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교섭에 대한 HR의 역할 확대다. 교섭은 더 이상 노무 담당자만의 영역이 아니다. 임금체계, 평가제도, 인력 운영 방식 등 HR이 설계한 제도 전반이 교섭 의제와 직결된다. 특히 제도 변경의 절차적 정당성, 사전 설명과 소통의 수준은 향후 분쟁 발생 시 기업의 책임 범위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형식적인 설명회나 공지로는 충분하지 않다. HR은 제도의 ‘내용’뿐 아니라 ‘과정’까지 관리해야 한다.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점은 관리자 역할의 재정의다. 현장 관리자는 노사관계의 최전선에 서 있다. 노란봉투법 이후에는 관리자의 발언 하나, 지시 방식 하나가 곧바로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이는 관리자를 위축시키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HR은 관리자에게 법적 리스크를 회피하라고 주문하기보다, 갈등을 조기에 감지하고 대화를 통해 완충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 관리자 교육의 초점도 ‘하지 말 것’ 중심에서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로 이동해야 한다.

세 번째 변화는 분쟁 대응 방식의 전환이다. 손해배상이나 가압류는 여전히 법적으로 가능한 수단이지만, HR 관점에서는 이제 ‘최후의 수단’이다. 강경 대응은 단기적으로 질서를 회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조직 신뢰를 훼손하고 장기적 인사 운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조정, 중재, 노사협의 등 ADR 방식은 선택지가 아니라 HR이 갖추어야 할 기본 도구가 되고 있다. 분쟁을 법정으로 보내기 전에 조직 내부에서 흡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원·하청 및 조직 경계 관리다. 실질적 지배·영향력 개념이 부각되면서, HR은 더 이상 ‘법인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인사 리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력 운영 기준, 평가 방식, 근무 조건에 대한 실질적 관여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이는 법률 문제가 아니라, 조직 설계와 인력 운영 원칙의 문제다.

노란봉투법은 HR에게 부담만을 주는 법이 아니다. 오히려 이 법은 HR의 전략적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노사관계를 비용이나 리스크로만 보지 않고,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설계하는 핵심 요소로 다룰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법 조항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방향성을 HR 시스템과 관리자 행동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다.

이제 노사관계는 ‘문제가 생기면 대응하는 영역’이 아니라, HR이 평소에 설계해야 할 조직 운영의 일부다. 노란봉투법 이후의 경쟁력은 강한 제재 수단이 아니라, 예측 가능하고 신뢰 가능한 인사 시스템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HR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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