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신문=박원용 전문위원]

1. 투쟁의 시대가 남긴 유산
노동운동의 역사는 곧 투쟁의 역사였다.
19세기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에서부터 미국의 사무엘 곰퍼스, 한국의 전태일에 이르기까지, 노동운동은 ‘존엄한 인간으로 살 권리’를 외치는 절박한 목소리로 시작됐다. 산업화의 그림자 속에서 노동자는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고, 그 싸움은 때로는 거리의 함성으로, 때로는 법정의 투쟁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의 리더십은 ‘희생과 저항’의 리더십이었다.
리더는 대중의 분노를 조직하고, 불평등한 권력 구조에 맞서 싸우는 존재였다.
그 덕분에 노동자는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산업안전 등 최소한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유산은 새로운 현실 앞에서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
2. 산업 구조와 세대 인식의 단층선
2025년의 노동환경은 과거와 전혀 다르다.
자동화, 인공지능, 플랫폼노동, 비정규직 확대 등 노동의 형태 자체가 분절화되고 있다.
노동자는 더 이상 한 공장, 한 사무실에 모여 동일한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는다.
대기업 정규직, 플랫폼 프리랜서, 청년 계약직, 시니어 재취업자 등 노동의 스펙트럼은 넓어졌고,
노동조합의 기반이었던 ‘공통의 경험’은 약화되었다.
세대 간의 가치관도 달라졌다.
기성세대가 ‘조직을 통한 집단의 힘’을 강조했다면,
MZ세대는 ‘공정, 개인의 성장, 일·삶의 균형’을 중시한다.
이들의 눈에 과거의 노조는 종종 경직된 조직, 정치화된 집단으로 보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세대 교체형 리더십’이 요구된다.
3. 새로운 리더십의 핵심: 설득·전문성·미래지향성
21세기 노동운동의 리더는 더 이상 ‘투사형 전사’로만 존재할 수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협상가이자 설계자’로서의 리더십이다.
1.) 설득과 공감의 리더십
투쟁의 언어가 아닌 대화의 언어로 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노조는 사회적 고립에 빠진다.
젊은 세대, 비조합원, 시민사회와 소통하며 “노동이 곧 사회의 이익”임을 공감시키는 힘이 필요하다.
2.) 전문성 기반 리더십
임금·근로조건만이 아니라 생산성, 기술 변화, ESG 경영을 이해하고,
경영과 경제를 아우르는 전문성을 갖춘 리더가 되어야 한다.
영국의 존 몬크스(John Monks)처럼 ‘합리적 협상가형 리더’가 새로운 모델이다.
3). 미래지향적 리더십
노동조합은 이제 정책 파트너이자 사회적 혁신 주체가 되어야 한다.
플랫폼노동 보호, 직업전환훈련, 청년 일자리, 고령사회 노동시장 등
미래 의제를 선도할 수 있는 ‘정책 창출형 노조’로 변해야 한다.
4. 한국 노동운동의 과제
한국의 노동운동은 여전히 ‘투쟁의 유산’과 ‘변화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한다.
전태일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인간존중의 기초’를 일깨우지만,
김금수나 이수호, 김주영 등 합리적 리더들이 시도했던 사회적 대화 모델은 여전히 미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의 정신’과 ‘미래의 전략’을 잇는 리더십이다.
젊은 세대와 중장년 조합원이 공존하고, 기업과 노조가 생산성·지속가능성 중심의 협력 모델을 함께 설계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
이때 리더는 비판의 중심이 아닌 신뢰의 축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5. 결론: ‘새로운 전태일’은 누가 될 것인가
이제 노동운동의 리더십은 거리의 투사에서 사회적 설계자,
대립의 상징에서 연결의 상징으로 변화해야 한다.
‘노동의 가치’는 단지 임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회를 지속시키는 힘이다.
미래의 리더는 싸우는 자가 아니라 합리와 통찰로 이끄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가 바로 “새로운 시대의 전태일”일 것이다.
“과거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고,
미래는 우리에게 지혜를 요구한다.”